시인이란 본래 패배자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므로 외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좌절된 자신의 욕망을 글을 통해서
배설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 속에서 항상 욕망의 몸짓을 찾을 수 있다. 작가 이청준은 일종의 시원적 글쓰기로
일기와 편지를 상정하고 있다. 그는 「지배와 해방」이라는 단편에서 이정훈이라는 소설가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이청준
2000, 111-112):
시인에게는 항상 어떤 '적敵'이 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그러므로 항상 전쟁과 같이 치열한 것이다. 적어도 훌륭한
시인들은 그렇다. 그런데 그 적과 시인의 관계는 간단치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적은 시의 원인이기도 하고, 시인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친숙한 존재가 바로 적일 수 있다. 시인은 그러므로 때로 그 적을 극복하려는 경향보다는 그 적 속에서
안주安住하는 경향을 보인다. 적이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김우창은 소월의 시를 논하면서 그 주主가 되는
전통적 정서 '한恨'을 두고 "고통은 세계에 대한 반격이 되지 않고 감미로운 슬픔이 되어버린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곧이어 "素月이 의식적으로 전통적이 되었을 때, 보다 더 선명한 詩的 形象化에 성공한다"고 지적한다(김우창 1977,
45).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적은 시 자신인 것이다.
보들레르와 이성복의 적은 '권태'라고 할 수 있다. 권태ennui는 『쁘띠 로베르』 사전에 따르면 "① 깊은 슬픔, 커다란 슬픔
② 어떤 모순을 겪는 고통 ③ 나태나 단조로운 일 혹은 관심의 상실에서 오는 피로와 텅 빔의 인상 ④ 막연한 우울, 관심을 잃게
만들고 아무 것에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정신적 피로"이다. 권태는 슬픔이면서, 일종의 피로다. 그리고 그것은 텅 빈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이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권태는 결국 치료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권태는
결국 삶의 파괴에 다름아니다(구연상 2003, 193):
그러므로 권태ennui라는 낱말은 우울spleen과,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음mort과 연결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부정적
상황은 시를 통해서 철저하게 형상화됨으로써 뚜렷한 예술적 성취로 나타난다. 보들레르와 이성복은 권태와 우울에서 그리고 죽음의
안에서 치열하게 시를 쓴다. 그리고 그 시가 목표하는 것은 권태와 우울과 죽음의 극복, 혹은 결국 권태와 우울과 죽음 그
자체이다. 우리는 보들레르와 이성복에게 있어서 권태가 어떻게 시적 대상으로 자리 잡는지의 과정을 볼 것이다.
I. 권태, 시인의 적
보들레르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진정으로 삶의 패배자였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한 충격과 엄격한 명문 고등학교에서의 억압이 그
원인의 하나이다(김붕구 1977, 39-40). 한편 대학에 입학해서는 그의 타고난 방탕벽이 문제가 되어 가족회의에 결정에 따라
여행에 보내지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에게 금치산 선고까지 내려진다. 금치산 선고는 무엇보다도 사회인으로서 실격을 의미하고,
보들레르를 평생 미성년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가 느꼈을 패배의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이진성 2003, 25). 보들레르의
삶은 고독감과 무기력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110):
그가 '권태'를 '악' 중의 '악'으로 꼽은 것도 분석적 지성의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그리고 어떠한 의도도 숨겨지지 않은
취향의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느낀 '고독감'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신경 약화, 의지 박약, 의기 소침,
'억눌림과 권태의 암울한 감정인 우울(spleen)'과 무력증으로 확장되어 그를 종종 괴롭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때로는 몇 달 동안이나 긴급한 일들을 뒤로 미루게 하는 '몽롱한 상태'에 빠져 들기도 하는 보들레르는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는 이 같은 '지긋지긋한 정신상태'를 서시에서는 극복해야 할 '악 중의 악'으로 꼽고, '권태'라는 널리 쓰이는
말로 호칭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권태의 원인을 다만 그의 개인적․사적 불행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랑스 문학에서 속에서 만약 '권태'가
씌어진 맥락을 본다면, 샤또브리앙의 『르네』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인데, 『르네』에서의 권태도 이미 '인생의 무상함', '인간의
나약함', '누나에 대한 복합적인 사랑', '급격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환멸', '외부 세계와의 불일치', '불가능한 완전성에의
갈망' 등의 복잡한 의미구조를 갖고 있다(윤성숙 1997, 194-201). 보들레르의 권태도 이 『르네』를 딛고 있는
것이다(정경임 1984, 21)그의 개인적인 불행에 그친다면, 우리는 실증주의자들처럼 『악의 꽃』의 각 시편들을 보들레르의 삶과
하나하나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보들레르적 상응correspondances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상理想으로의
'수직적인 상응'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시집 전체를 통해서 거대한 괴물로 인식하고 있는 권태는 보다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악의 꽃』의 서시序詩인 「독자에게」에서부터 등장하는 의인화된 권태를 보자:
그것은 권태다! ― 무심코 눈물 머금은 눈으로,
그는 단두대를 꿈꾼다, 물담배를 물고서.
당신은 그를 알지,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적인 독자여, ― 내 닮은꼴, ― 내 형제여.
C'est l'Ennui! ― l'œil chargé d'un pleur involontaire,
Il rêve d'échafauds en fumant son houka.
Tu le connais, lecteur, ce monstre délicat,
―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ère.
여기서 권태는 물담배를 물고 교수대絞首臺를 꿈꾸는 괴물로 그려진다. 이 교수대가 처음부터 환기하는 죽음의 이마쥬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첫 두 연에서 등장하는 죄péché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죄는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매우 "끈질긴têtu" 존재이다. 그런데, 이 죄 역시 단지 보들레르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보들레르가 이 시에서
'우리nous'라는 대명사와 그 '우리의notre/nos'라는 소유형을 계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리석음, 과오, 죄, 인색함은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고, 우리의 몸을 괴롭힌다,
[...]
우리의 죄는 끈질기고, 우리의 뉘우침은 느슨하다;
La sottise, l'erreur, le péché, la lésine,
Occupent nos esprits et travaillent nos corps,
[...]
Nos péchés sont têtus, nos repentirs sont lâches;
그러므로 보들레르가 말하는 죄란 '우리'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다. 보들레르는 또한 권태를 이야기하면서 "당신은 그를
알지"라고 말한 것이다. 보들레르의 권태는 보들레르 자신의 힘든 삶에서 추출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에서 뽑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péché는 곧 원죄péché originel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L'irrémédiable」이라는 시 속에서 나타난 추락의 모습을 통해 보들레르의 원죄의식을 추출해낼 수 있다(장경임
1984, 9-10). 보들레르가 자주 기독교적인 용어를 시 속에 차용하는 것도 바로 이 원죄의식 때문이다. 이진성(2003,
215-223)은 방디W. T. Bandy의 어휘 분포 조사와 그에 근거한 기로Pierre Guiraud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보들레르의 어휘는 '지금 여기'를 기준으로 네 방향으로 뻗어가는데, 그것은 각각 '저곳'과 '인공 낙원' 그리고
'지옥'과 '창공'이다. 그러나 '저곳'을 바라는 상상력은 행복감을 통해서 '창공'으로 향하거나 하락 또는 추락을 통해서
'지옥'으로 향하고, 하시시 등을 통해 '인공 낙원'으로 일단 향하더라도 그 궁극적 종점은 상승을 통한 '창공'이나 고통을 통한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들레르의 어휘는 궁극적으로 2분법적인 모습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2분법적인
모습은 보들레르 시의 기독교성 혹은 반기독교성을 드러내주는 지표이다(Friedrich 1996, 65):
이러한 단어군 배후에 기독교의 잔해가 잠복해 있다. 보들레르는 기독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기독교도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가 '사탄주의'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고 해서 기독교와의 연관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사탄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기독교적인 낙인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들레르의 권태가 지닌 형이상학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흔히 보들레르의 시적 여정을 권태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거니와(이진성 2003, 110; 김기봉 2000, 225-228; 김붕구 1977, 315-318), 그 구원의
실재를 믿는 것은 무척 형이상학적인 믿음이다. 더욱이 권태의 실재 그 자체야말로 인간을 형이상학적인 조건 속에 놓는 것이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김우창(1977, 70-71)은 시에서는 '구조의 노력'이 긍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를 "그것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세계의 지루하고 얼크러진 것들의 밑바닥을 꿰뚫어 보고자 하는 형이상적 정열"이라고 정의하고, '구조의 노력'이란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활동", 즉 "스스로의 창조력을 선언하는 정신의 자기긍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용운만을 제외하고, 최남선에서
서정주까지 한국 시의 실패는 "전체에 대한 관계를 상실한 조각 조각이 되어"버린, 바로 이 구조의 실패라고 설명한다.
주지하다시피, 형이상 시란 끝없이 관념어를 늘어놓음으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형이상 시는 현실에 분명히 발을 딛고
있음으로만 가능하다. 형이상적 충동은 현실의 모순 속에서 배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김우창(1977, 132-133)의
한용운 시 「당신을 보앗슴니다」의 분석을 보자: 한용운은 "아아 왼갓 倫理, 道德, 法律은 칼과黃金을祭祀지내는 烟氣인줄을
아럿슴니다 / 永遠의사랑을 바들ㅅ가 人間歷史의첫페지에 잉크칠을할ㅅ가 술을말실ㅅ가 망서릴
에
당신을보앗슴니다"라고 노래한다. "永遠의사랑"은 은둔을 말하는 것이고, "人間歷史의첫페지에 잉크칠"은 인간 역사의 전적인 부정을
의미하며, "술을말실ㅅ가"는 초월의 세계로의 은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당신"은 정확히는 알기 힘들지만 위
셋의 반명제로서의 당위적 절대선이다. 김우창은 이와 같은 이해가 "한용운韓龍雲의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형이상학적 이해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詩人"으로서의 한용운의 형이상학적 모습이다.
한국 시는 이성복에 이르러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적 시인을 갖는다. 한용운의 시는 뛰어난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시도 많은데 비해, 이성복은 세계관의 시적 형성이 뛰어나다. 그가 세계를 파악하면서 자신의 시에도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적 구조를 부여하려고 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김현 1992, 122). 그것은 그의 각 시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성복이 형이상학적 구조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궁핍한 시대" 곧 권태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권태는 헐거움에서 드러나는데, 가령 그는 「나는 식당주인이」에서 "삶은 내게 너무 헐겁다……"고 소리죽여 탄식하고 있고,
「다시 봄이 왔다」에서는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을, 「격렬한 고통도 없이」에서는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날이
가고 봄 여름이 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데뷔작인 「1959년」을 보자: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修飾했을 뿐 아무 것도 追憶되지 않았다
[…]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우리는 이성복이 패배자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고, 표면적인 실패 없는 삶을
살았다. 그의 문학앨범(이남호․이경호 1994) 속의 간략한 개인사적인 글을 보아도 그런 것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인용한 시의
제목인 「1959년」을 근거로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려는 시도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국민학교에 갓 입학했을
그 해에 대해 별다른 기록도 없을 뿐더러, 7살 정도의 나이는 이와 같은 정서를 담기는 힘든 나이다. 그렇다면 1959년은
일종의 상징적 시간이고, 추체험의 공간이다(김현 1992, 122).
그렇다면 그의 "무기력과 불감증"으로 표상되는 권태의 감정은 대체 어디서 추체험한 것일까. 이성복과 같은 해에 태어난 황지우는
이성복이 실명實名으로 등장하는 시 「활엽수림에서」를 통해 당시의 젊은이들이 느꼈던 상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탱크가 진주하고, 학교는 문은 닫고, 새 헌법이 선포되던 시절이다.
1973
년: 동숭동 개나리꽃 소주병에 꽂고 우리의 緯度 위로 봄이 후딱 지나간 것을 추도하다. […] 그때
홍표·성복이·석희·도연이·정환이·철이·형준이·성인이와 놀다. 그들과 함께, 스메타나, 「몰다우江」 쏟아지는 學林다방, 木계단에
오줌을 갈기거나, 지나가는 버스 세워놓고 욕지거리, 감자 먹이기 등 發狂을 한다. 發情期, 그 긴 여름이 가다.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바람이 다가오는 듯, 예감의 공기를 인 마로니에, 은행나무숲 위로 새들이 먼저 아우성치며
파닥거리다. 그때 生을 어떤 사건, 어떤 우연, 어떤 소음에 떠맡기다. 그 활엽수 아래로 강림하던 순간, 그 계절의 城 떠나다.
친구들 「아침 이슬」 「애국가」 부르며 차에 올라타다. 황금빛 잎들이 마저 평지에 지다.
이성복의 시대는 "오지 않는 봄"의 시대, 혹은 황지우의 표현대로 하면 "봄이 후딱 지나간" 시대다. 봄은 새싹이나 아지랑이의
계절, 곧 상승의 계절이다. 그러므로 봄의 상실은 이상으로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열매를
맺는 복숭아나무나 불임의 살구나무는 분명히 마가복음 11장의 열매가 없어 예수에게 저주받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딛고 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1장에도 똑같이 나오고, 누가복음 13장에도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는데, 여기서 열매는 믿음의 결실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오지 않는 봄"의 시대는 믿음이 없는 시대이며,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역시 죄악의 시대다.
뒤따라오는 감옥의 이마쥬는 그것을 보충해준다.
감옥이라는 낱말은 흔히 죄악péché보다는 범죄crime와 관련되어 있다. 이성복이 '감옥'이라는 낱말을 선택한 것도 "「아침
이슬」 「애국가」 부르며 차에 올라타"던 친구들의 감옥행, 곧 군부 정권에 의해 범죄crime로 규정된 행위의 결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시어 앞에 붙은 "보이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는 감옥이라는 낱말에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덧붙여준다. 그럼으로써 '감옥'은 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대적 상황과 시인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죄의 문제를 함께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II. 권태와 잠, 죽음
권태로운 상황 속에서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잠자는 것뿐이다. 술이나 마약을 통해서 '인공 낙원'을 꿈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보들레르는 「취하십시오」라는 산문시를 통해 그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러려면
항상toujours 취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내면 일기』을 통해서 "방탕 후에는 언제나 자신이 한층 더
외롭고, 더욱 버림받은 느낌이 든다"고 적고 있다(Baudelaire 2001, 61). 게다가 마약의 사용은 인간의 의지를
무력화시킨다는 치명적인 폐단이 있다는 점에서 보들레르는 주의를 당부하고 있기도 하다(이진성 2003, 40; 맹미경 1999,
70). 이성복은 「내 마음에 아직도 기억하니」에서 자신의 시절을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성복은 또 다른 데뷔작인 「정든 유곽에서」를 통해 그 권태로운 상황에서의 '잠'을 형상화하고 있다.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雜草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 했다
잠자는 동안 내 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지하의 잠"이 "한반도"와 연결되는 것은 놀라운 상상력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1959년」의 '감옥' 이마쥬와 같은,
시대의 암울함과 개인의 슬픔이 함께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본다. 「1959년」의 화자話者가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자진해" 가듯,
「정든 유곽에서」의 '나'는 그런 암울함과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잠을 잔다. 그러고보면 '정든 유곽에서'라는 제목 자체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유곽이란 정을 주는 곳이 아니다. 유곽은 "공중 화장실처럼" 다만 자기 소비를 하기 위해서 돈을 치르는
곳이며(Baudelaire 2001, 45), 그곳에서는 어떠한 진전이나 진행도 없는 멈춰진 공간이다. 그러므로 유곽은 또한 곧
잠이다. 가령 그의 아포리즘 가운데
나의 첫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1』
두번째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2』
…………………………………………
마지막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n』
이렇게 하면 나는 출발점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 되며, 그것은 바로 내가 바라는 완벽한 승리이다.
라는 부분은 유곽이 지닌 잠의 속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이성복 1990a, 137). 그런데 「정든 유곽에서」에서
'나'가 잠자는 곳이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이라는 점은 또한 주의를 요한다. 시인은 다른 글에서 "집은 유곽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이성복 1990a, 154). 우리는 시인이 분산 배치해놓은 집-하숙집의 교묘한 변화 이렇게 인식한다.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이성복은 "몸의 집을 가졌으나, 마음의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것이다(이성복
1990b, 153). "하숙집"이란 그곳에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쓰는 임시의 집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지금 집에 없는
사람은 이제 어떤 집도 짓지 못하리다"라는 릴케의 시를 인용하면서 미래의 '집'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이성복
1990b, 152). 그는 "출발점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이는 누구일까.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이어지는 시의 전개 속에서 누이는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앞서의
"한반도", "조국" 등의 단어와 연관되어, 어떤 공동체적 타락을 의미한다. 이것과 마태복음 27장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가 연결되어 타락이 가진 죄péché의 속성이 문제되고, 그
죄는 다시 죽음과 연결된다. 이성복의 시 속에서 잠-죽음의 이마쥬는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1) 《가슴아, 이틀만 뛰지 말아 줘
- 「루우트 기호 속에서」
2) 여러 번 흔들어도 깨지 않는 잠, 나는 잠이었다
-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3) 잠은 든든한 天幕이요 나날은 떨어지는 빗방울이니
- 「處刑」
4) 죽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
- 「분지일기」
5) 깨지 않는 잠을 오래 자고 싶었다
- 「약속의 땅」
장시長詩 「분지일기」는 또다른 장시 「약속의 땅」과 함께 섬세하게 분해되어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을 이루게 되는데,
『남해 금산』의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에서는 "죽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라는 구절이 "날아가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날아감이 어떤 희망이나 환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분명하다.
"엘리"의 "승천"이 "참한 죽음"의 꽃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그 문제는 금세 풀릴 수 있다.

[그림 1]
이성복은 보들레르에게서 자신과의 유사점을 찾게 된다. 그가 1982년에 제출한 석사논문은 「Baudelaire에서의 현실과
신비」이다. 그 논문이 '현실 - 현실에서 신비로 - 신비 - 신비에서 현실로'의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우리는
이성복이 보들레르에게서 받은 깊은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이성복 1982, 112). 시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신비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신비로' 결실없는 왕복을 되풀이하고 있"는 삶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성복
1990a, 217). 과연 보들레르의 시를 관통해서 '잠'과 '죽음'의 이마쥬는 무엇보다 풍부하다.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무척
의지적이다:
1) 이 열쇠의 회전이 내 고독을 늘리고, 세계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방벽을 강화할 것이다.
Il me semble que ce tour de clef augmentera ma solitude et fortifiera les barricades qui me séparent actuellement du monde.
- 「새벽 한 시A une heure du matin」
2) 무기력하게 그녀의 가슴 그늘에서 잠드는 것
Dormir nonchalamment à l'ombre de ses seins,
- 「거대한 여자La Géante」
3) 그리고 물 속의 상어처럼 망각 속에서 잠들기를.
Et dormir dans l'oubli comme un requin dans l'onde.
- 「즐거운 죽음La Mort Joyeux」
보들레르는 죽음을 즐거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들레르적 죽음은 무척 의지적이다(이성복 1982, 13-16).
가령 「암살자의 술」에서 "개처럼 잠들리라je dormirai comme un chien!"라는 구절을 두고 미래형으로 쓰인
잠자다dormir 동사가 환기하고 있는 것은 "시인의 열망이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음을 알린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의지적이라는
것은, 잠이 이를테면 싸르트르가 말한 즉자être-en-soi적 존재와는 다르다는 것을 밝혀준다. 시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무화無化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상상력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이상理想이라는 것은 오해이다. 보들레르의 시집 제목이 이미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라는 점은 그것을 밝혀 보여준다. '악의 꽃'이라는 제목은, 플라톤이나 롱기누스, 가까이는 칸트가
이야기했던 서양 사상의 '진선미' 개념에 대한 혁파를 의미한다. 그가 「아름다움의 찬가Hymne à la Beauté」에서
"네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상관없다, / 오 아름다움이여!"하고 부르짖는 것은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흔히
보들레르에게서 이상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여행도 사실은 진정한 이상은 아니었고, 예술로써도 이상향에는 도달할할 수 없었던
것이다(맹미경 1999, 77-82). 시인 스스로 「여행Le voyage」에서
여행에서 얻는 것은 쓰라린 지식!
세계는, 단조롭고 조그많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언제나,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권태의 사막 가운데의 끔찍한 오아시스를.
Amer savoir, celui qu'on tire du voyage!
Le monde, monotone et petit, aujourd'hui,
Hier, demain, toujours, nous fait voir notre image:
Une oasis d'horreur dans un déser d'ennui!
라고 선언하고 있고, 또 「예술가의 고해의 기도」에서는
자연이여, 동정심 없는 마술사여, 늘 의기양양한 경쟁자여, 나를 놓아주시오! 내 욕망과 내 자만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마시오! 아름다움의 탐구는, 예술가가 지르는 패배 직전의 공포의 외침과 같은 결투로구나.
Nature, enchanteresse sans pitié rivale
toujours victorieuse, laisse-moi ! Cesse de tenter mes désirs et mon
orgueil ! L'étude du beau est un duel où l'artiste crie de frayeur
avant d'être vaincu.
와 같이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보들레르가 바라는 진정한 '여행'은 이와 같은 단조로운 여행이나 이상향을 향한 전통적인 여행이 아닌 것이다. 그 여행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그곳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보들레르와 이성복에서 공통되는 것은 권태를 현실로 인식하고 그 현실에 대응하는 방안이다. 두 시인은 나란히 그 권태 속에서 잠을
자거나 죽음을 청했다. 물론, 그 대응 방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성복이 좀더 시대의 아픔에 직접적으로 민감했던 것은
80년대 한국의 상황과 떨어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그 둘의 차이는 여전히 명백한 선을 긋고 있다. 이를테면
보들레르는 『악의 꽃』 마지막에 위치한 시 「죽음La Mort」에서
라고 말함으로써, 죽음이 가진 무언가를 시 중요하게 바라고 있다. 이미 헛된 이상이 보통의 '여행'에 대한 극복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이 '죽음'은 어떤 이상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죽음은 죄péché와 연결된 권태가 교수대를 꿈꾸었듯이
어떤 보편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생이 그침이 아니라 새로운 삶인 것이다.
반면, 이성복에 있어서는 죽음조차도 그의 휴식은 아니다. 그는 애써 죽음에 도달해 무덤에 묻혔다가도,
에서 보는 것처럼 힘겹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같은 시에서 "가능하면 이 잔을 치워 주소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기를 갈망하지만
는 비극적인 삶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는 비관주의의 인식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것은 두 시인의 공통점이다. 두 시인은 모두 삶을 '죄'와 '권태'의 현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두 시인의 시가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보들레르가 「시계L'horloge」에서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시간'이었는데,
마지막 장에 가서 늙은 선장 죽음에게 "시간이 되었소!"라고 외친 것은, 시간이 곧 죽음이 그의 시의 동반자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이성복의 경우에도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낸 말 '치욕'을
두고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 뻑뻑한 사랑이었음"(「오래 고통받는 사람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라고 선언하는 시인의 마음속에서, 고통이 바로 자기 시의 동력이라고 느끼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I. 떽스뜨
1. 보들레르Baude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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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성복
이남호·이경호 엮음. 1994. 『이성복 문학앨범: 사랑으로 가는 먼 길』. 서울: 웅진출판.
이성복. 1980.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13. 서울: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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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판 1986]1994a. 『남해 금산』. 재판. 문학과지성 시인선52. 서울:문학과지성사.
――――. 1990a. 『그대에게 가는 먼 길: 이성복 아포리즘』. 서울:살림.
――――. 1990b.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 이성복 산문집』. 서울:살림.
이성복·이인성·정다비 엮음. 1982. 『우리 세대의 문학』 1: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서울:문학과지성사. (장시 「분지일기」가 수록되어 있음).
―――― 엮음. 1983. 『우리 세대의 문학』 3: 살아야 할 時間들. 서울:문학과지성사. (장시 「약속의 땅」이 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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